제목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저자 이토 히로시
옮김 지비원
출판 메멘토 (2012)
트렌드라고 불리는 현상이 있습니다. 트렌드라고 하면 뭔가 이름난 연구소의 보고서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찬찬히 꼬리를 물고 들어가면 그 시작에는 결국 조금 낯설고, 새로운 시도들을 한 개개인의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몸소 겪은 조금은 특별한 경험들을 담아 '이렇게 해도 되더라고요.'라고 용기 있게 말해주는 사람들이요. 그런 연유에서 저는 닦여진 길에서 비켜서 익숙하지 않은 길을 따라간 사람들을 보면 그것이 무엇이든 멋지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토 히로시의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그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큽니다. 하루 중 긴 시간을 차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대변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를 돌이켜보았을 때, 나에게 일이 어떤 의미인지, 일의 목표가 무엇인지 골똘히 사유해볼만한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000이 되어야지' 혹은 '000에 취업을 해야지' , '이 일을 해서 돈을 000만큼 벌어야지'와 같은 생각이 먼저였던 거 같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충분할만큼 깊이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사회에 뛰어들어 이렇게 저렇게 부딪치다 보며 깨닫게 된 것이죠. '아, 이게 아니었어. 내가 원하던 것은 이게 아니었던 거 같아."
책의 저자 이토 히로시는 자신을 '전투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규정하며 스스로에게 필요한 일, 인생에서 삼고자 하는 일의 실체를 '생업'이라는 단어를 써서 정의합니다. 그가 말하는 생업이란,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고, 돈 때문에 내 시간과 건강을 해치지 않으며, 하면 할수록 머리와 몸과 단련이 되고 기술이 늘어나는 일' (p.9)입니다.
처음부터 '생업'을 자신의 일로 삼았던 것은 아닙니다.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벤처기업 회사였습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그러하듯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기간과 낙방의 경험을 거쳐 취직을 했습니다. 취직을 한 후 밤낮없이 일을 하고, 월급으로 월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아이스크림에 탕진했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 탕진이라니 좀 귀엽습니다. 저자의 성정이 추측되기도 하고요.) 이후 퇴사를 하였고, 그로부터 일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며 건강을 해치지 않고도 그럭저럭 즐겁게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5년째 스스로 만들어하고 있습니다.
게릴라성으로 만들어 온 그럭저럭한 일들은 조금은 기상천외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여간 평범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콘크리트 블록 담 부수기를 일거리로 만든다거나 아마추어로서 목조 학교 건물에서 결혼식을 기획 운영하는 등. '이 사람은 독특하니까 이런 일도 할 수 있는 거야'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마음을 꿰뚫듯이, 어떻게 생업을 발굴할 수 있는지, 가격은 어떻게 책정해야 하는지, 작업의 완성도에 대한 부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에 대하여 세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당장에라도 재미있는 일을 꾸며 보고 싶습니다.
재미가 있어 술술 익히지만 책장을 넘겨가며 저자가 일에 대하여, 자신의 생활을 구축하기까지 오래도록 진지하게 골몰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우리에게 새로운 노동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p.205)' 사회가 가혹하다면, 그리고 쓸데없는 가혹함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면 '세상과는 다른 규칙으로 살아갈 방법을 고민(p.210)'해보길 권합니다. 그에게 생업은 시대가 가진 한계에서 대안을 찾는 실험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무에서 유로 길을 만들어가는 여정을 보며 통념의 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말랑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동시에 허투루 넘기기에는 뼈아픈 문제의식과 담론들을 조곤조곤 짚어나가기에, 유쾌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었습니다.